이른 새벽 창으로 든 빛이 퉁퉁 부은 눈꺼풀을 아프게 찔러대는 느낌에 눈을 뜨니 낯선 커튼과 낯선 침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의아함도 잠시, 지난 밤을 떠올린 승수의 얼굴에 낭패라는 기색이 감돌았다. "일어나셨습니까." "..네, 어젯밤엔." 실례가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떤 말도 쉬이 꺼내지 못한채로 승수는 남자가 건넨 잔을 받아들었다. 커피는 ...
성룡은 손목을 그었다. 서율이 생각날때마다 시작된 자해는 이제 그의 얼굴이 더이상 쉽게 떠오르지 않을때가 되어서도 계속됐다. 꿈에라도 한번 나와달라 빌던 바람마저 무색할 시간이 흘렀다. 흐려지는 의식속으로 율의 화내는 얼굴이 나타나자마자 성룡은 웃었다. 마지막인데 또 화를내고 그러냐.말초부터 서서히 깨어나는 의식을 느끼며 성룡은 생각했다. 그것은 눈을 뜨면...
사랑이란건 달콤한 코팅 안에 싸인 쓰디쓴 알약이었다. 타이밍을 놓친 채 조금만 오래 물고있자면 혀끝으로 퍼지는 맛이란 도무지 참을 수 없으리만치 쓴것이어서 그건 어떤 종류의 달콤함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엇갈린 사랑은 그랬다. 소파에 앉아 읽던 책의 내용이 한글자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의식에 넘긴 책장들이 반도 넘게 넘어가있을때 율은 제가 읽고있...
http://sr-right-collabo.tistory.com/ 성룡른 합작에 냈던 글 백업입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퇴근길에 맞이한 하늘이 끄트머리부터 점점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다. 문득 네가 떠올랐다. -누군 노을을 보면 행복해진다는데, 난 노을 질 때만 되면 배가고파. -얼씨구? 퇴근시간이잖아요.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해, 그치 먹소? 장난스런 말...
관계에 있어 나는 늘 주도권을 쥔 사람이었다. 이 이상하고도 한쪽이 기울다 못해 아주 주저앉아버린 저울과도 같은 관계에서 주저앉은것은 너였으며, 그 저울에 발끝하나 툭 걸친 채 모든것을 관망하는것은 나였다. 네 시선의 끝에 서있는 나는 일찍부터 너의 절절함을, 애틋함을 알아챘음에도 네 마음을 받아줄 용의가 없어 늘상 그것을 무시하고 말았다. 나는 바빴고, ...
어느 도시에서는 끝없는 긴 가뭄에 지쳐 끝내는 기우제를 드린다 했다. 그 즈음 여는 그 가뭄의 원인이 새로 시작한 신의 연애사에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였다. 난데없이 꽃까지 피우지는 않는걸 보니 몹시 좋지는 않은가보구나- 하는 나름의 위안을 얻으며 술기운을 빌려 골아떨어지던 밤이 스물 하루쯤 되었을까, 도저히 익숙해질라야 익숙...
소설가라는 남자가 왜 이런 촌구석에 왔는지는 모를일이었다. 특별한 사건도 흥미로울 일도 없이 모두에게 무던하기 짝이 없는 일상들이 반복되는 이 시골에 무슨 글감이 있다고, 저사람이야. 누군데, 소설가. 슈퍼 앞 평상에 친구와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와득와득 깨물어먹던 혼은 친구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곤 입을 떡 하니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연예인...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평소와 같았으면 머리를 바닥에 뉘이자 마자 득달같이 밀려오는 수마에 금새 곯아떨어지고도 남았음이건만 토우는 쉬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딱딱한 돌부리가 결려서라고 하기엔 산천초목이 죄 벨것이었고, 덮을것이었고 몸을 뉘일자리였으니 그런 까닭도 아닐 터였다. 그저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아래로 자꾸만 흩날리던 자색의 비단이, 나부끼던 몸...
위에서 찾으십니다. 한낱 300년차 차사가 뭐라고 '윗분' 께서 찾으신단건지. 의아함과 함께 도착한 곳에서 여는 공간을 가득 채운 고압적인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염라대왕 이름값 한번 제대로 하시네, 옷매무새를 한번 가다듬고 커다란 검은 문을 열어젖히며 분위기만큼이나 문도 무겁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어서와. 문 너머의 인영을 마주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과방 소파 위에 웅크려 세상모르고 잠든 몸이 새삼 작아보였다. 추운지 자꾸만 몸을 옹송그리는게 궁상맞아보이는데 또 한편으로는 퍽 귀엽기도 해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자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등받이쪽으로 어찌나 파고들어있는지 성룡의 몸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걸터앉을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남아있어서 율은 그자리에 걸터앉아 작은 ...
-어디가 -소개팅 돌았어??? 읽던 만화책을 내팽개치며 벌떡 일어나려다 그만 침대에서 고꾸라지고 만 명석은 아픈것도 잊고 대뜸 소리를쳤다. 내가 물어야할 소리같다 어째? 여상스레 들려온 대답에 이제는 목덜미까지 붉힌채로 씩씩거리고있자니,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들려오는는것에 울화통이 터졌다. -어딜가? 소개팅? 미쳤어 김성룡? - 딱 소리와 함께 후드려맞은 뒷...
언제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그 캐캐묵은 기억속을 더듬어봐야 무슨소용일까. 아주 오래되고 오래된 그래서 기억조차 잘 나지않는 그 치기어린시절에 너와 나는 만났다. 우리, 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를 너와 내가 그렇게 만났다. 차동주는 모든걸 가진 남자였다.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나 귀하고, 고상하게 자라났다. 그 엄청난 재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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